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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외도에 병들어가는 남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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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담소 댓글 0건 조회 3,329회 작성일 05-09-2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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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 외도에 병들어가는 남편들… 자학·분노형에서 체념형까지

 
“죽고 싶은데, 아니 죽을 것 같은데 죽을 수도 없네요. 그냥 앉아 있어도 숨이 차고, 잠도 안 오고 미치겠어요.”
신경정신과를 찾아와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김모씨(43). 3개월 전 바람난 아내가 가출한 후 그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었고 이젠 직장생활까지 위기에 처했다. 회사 간부사원인 그는 나름대로 평화로운 가정의 가장이었는데 아내가 골프연습장에서 만난 남성과 바람이 난 걸 확인했다. 아내를 다그치자 아내는 홀연히 집을 나갔다. 아내를 찾으러 다니고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작 회사일은 뒷전이라 사장으로부터 “빨리 정리하지 않으려면 회사를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다. 흰머리가 늘고 갑자기 노안이 찾아와 몇달 사이에 10년은 늙어 보인다.
최근 아내의 외도가 늘어나면서 이처럼 병들어가는 남편들도 늘고 있다. 서울 대치동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신경정신과 전문의 유상우씨는 “4~5년 전만 해도 아내 외도가 원인인 사례가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한달에 1~2명”이라며 “처음엔 우울증, 불면증, 식욕부진 등을 호소하는데 심층상담을 해보면 그 원인이 아내 외도인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남편은 아내보다 5배 이상 고통
똑같이 외도를 해도 아내와 남편의 반응은 다르다. 아내들은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확인하면 분노하거나 심신의 고통을 느끼긴 하지만 “남자들이란 다 똑같아” 하고 남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거나 친구, 언니, 친정부모는 물론 시부모에까지 억울함을 하소연하며 위로받거나 공감을 얻는다. 반면 남편은 아내의 외도를 알아도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솔직히 고백할 경우 “오죽 남자가 못났으면 여자가 바람을 피웠겠느냐”는 비아냥을 듣는 것도 두렵고 본능적으로 타인이나 전문기관에 SOS를 치는 훈련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치로 표현하기 어렵긴 하지만 아내가 남편의 외도로 받는 충격이나 고통을 1이라고 할 경우 남편은 5~6배 이상의 고통을 느낀단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병후씨는 “남자들은 별 의미 없이, 본능적으로 바람을 피우는 것이 대부분이고 가정도 유지하려 하지만 아내들은 다른 남자가 생기면 깊이 빠져들어 남편과의 관계(성관계를 포함)를 끊거나 이혼을 결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또 남편에게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당신이 날 사랑해주지 않아서 나를 사랑해주는 다른 남자를 찾은 것’이라며 비난의 화살을 남편에게 돌려 남편들의 당혹감과 상처는 더욱 크다”고 설명한다. 외도를 하고도 당당히 이혼을 요구하며 오히려 가해자로 자신을 몰아가는 아내에게 남편들이 평상심을 유지하기는 힘들다.
아내의 외도를 확인한 남편들의 반응은 3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자학형. 분노를 참지 못해 병에 걸리는 이들로 숨쉬기 어렵다, 밥을 못 먹겠다,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등의 고통을 호소한다. 둘째는 체념형. “한때 사랑했고 아이들의 엄마니 용서하자”라며 현실을 잊으려 하거나 오히려 아내가 당당하게 대꾸할 경우 어찌 할 바를 몰라 체념한 이들이다. 마지막은 응징형. 아내를 폭언이나 폭행으로 괴롭히거나 상대방을 찾아가 협박을 하는 등 복수를 하는 이들이다. 유형은 다르지만 모두 엄청난 고통을 동반한다.
유상우박사는 “이런 남편들은 우울증이 심해져 자살충동을 느끼거나 때론 아내와 상대를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해 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면서 “일단 상담과 약물복용으로 분노감정을 조절한 후에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남편들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
단순히 몸과 마음만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때론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아내가 밤마다 누군가와 채팅하고 e메일도 보낸다고 의심하던 어느 남편은 회사동료에게 부탁해 아내의 e메일을 해킹했다가 불구속 입건됐고, 한달에도 2~3건씩 ‘불륜아내 살해한 남편’ 기사가 빠지지 않고 매스컴에 등장한다.
법적인 판결 역시 남성들이 보기엔 공평하지 않다. 아이 조기유학에 동반했던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당당히 이혼을 요구해도 기러기 남편은 ‘가정을 소홀히 한 점이 인정되므로 재산을 분할해주라”는 판결을 받았고, 남편 술주정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다른 남자를 만나 가정에 소홀했던 아내에게도 재판부는 “부인도 책임 있지만 폭력적이고 강압적 방식으로 대응해온 남편이 더 나쁘다”며 두 사람은 이혼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는 것은 아내들의 고정 레퍼토리였지만 이젠 남편들이 이런 말을 한다. 아내들은 얼마든지 남편 없이도 자식들을 돌보고 키울 수 있지만 남편들은 식사 준비 등 살림이나 아이와의 대화에 익숙지 않고 생계를 위해 사회생활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선뜻 이혼을 요구하지도 못한다. 아이는 생모가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큰 이유다. 또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남편의 경우 오래 살을 맞대고 살아온 아내에게선 아주 편안한 옷을 입거나 안락한 의자에 앉았을 때 느끼는 엔돌핀이란 호르몬, 평화롭고 친숙한 감정을 느끼는데 그런 아내가 사라지면 모든 생활의 축이 무너지는 것 같은 불안함과 허탈감 때문에 자살충동까지 느낀다고 한다.
“유부녀가 다른 남자를 만나면 남편이 무능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요. 내 경우엔 아내에게 외제 자동차를 선물해주었는데 10살 연하의 자동차 세일즈맨과 바람을 피웠습니다. 차라리 저보다 유능하고 멋진 남자와 바람났다면 이렇게 비참하거나 분하지도 않고, 내가 가정을 소홀히 했다면 반성하고 아내를 용서하겠어요. 그런데 이건 완전히 욕정에 눈이 먼 천박한 여자란 게 드러났으니… 그래놓고도 뻔뻔하게 이혼을 해달라고 하고 재산분할을 요구합니다. 내가 피땀으로 일군 재산을 왜 그 더러운 여자에게 줘야 합니까. 너무 억울하고 분해 미칠 것 같습니다. 요즘은 수면제와 혈압약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52세의 중소기업 사장인 박모씨의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면서 언니 집에 머물고 있단다. 더욱 서글픈 것은 대학생인 자녀들의 반응이다. 어머니를 비난하기보다는 “어른들의 문제는 어른들이 해결하라, 이혼해도 상관없다”고 한단다. 그는 “아이들에게도 나는 돈 버는 기계밖에 안 되는 것 같아 내 인생 전체에 회의가 든다”며 울먹거렸다. 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소장은 “결혼은 함께 가꾸어가는 꽃밭과 같아서 평소에 대화를 많이 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해줘야 외도도 줄어들고 가정 평화가 유지된다”면서 “부부 성도덕과 가치관이 엄청난 속도로 변하는 시대엔 부부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주연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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